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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운명?
어린 시녀는 심균당이 화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휘장을 걷어 올렸다. 심균당은 성큼성큼 화청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소리가 들리자 영흥후부의 자매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입구에 심균당이 모습을 드러내자 자매들은 눈을 반짝였다.
“아당!”
“오라버니!”
자매들이 모두 심균당에게로 몰려들었다.
원래 주인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심균당은 자매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보라색 치마와 남색 배자를 입은 여자는 둘째 심심련(沈心蓮)이었다. 둘째는 영흥후 부인을 절반쯤 닮았는데 턱이 뾰족하고 이마가 넓었다. 눈은 크고 동그랬다.

둘째 옆에 있는 여자는 넷째 심심유(沈心瑜)였다. 심심유는 올해 계례(*笄禮: 여자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올리는 일종의 성인식)를 올렸다. 초봄이 생일인 심심유는 또래보다 몸집이 커, 성인이나 다름없었다.
넷째는 둘째보다 키가 조금 작았다. 얼굴은 어머니 영흥후 부인을 닮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버지 영흥후를 닮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매 중에서는 미모가 가장 출중했다. 특히 눈은 심균당과 많이 닮아 있었다.
친자매 중 가장 어린 다섯째 심심동(沈心彤)는 열네 살이었고 생일은 12월이었다. 키도 크지 않아 어린 꼬맹이처럼 보였다. 발육이 늦는 건지 열한두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섯째는 세상을 떠난 영흥후를 제일 많이 닮았는데 특히 눈이 그랬다.
자매 중에는 둘째가 제일 성격이 직선적이어서 매사에 맺고 끊는 게 분명했다.
넷째는 우유부단했고 다섯째는 겁 많고 소심했다.
심균당은 올해 열일곱 살이었다. 둘째 심심련은 심균당보다 한 살 반 더 나이를 먹어 올해 열여덟 살이었다.
평범한 귀족 집안이라면 열여덟 살 난 딸은 진즉에 시집을 갔을 테지만 실시간파워볼 심심련은 아직도 혼례를 올리지 못했다.

연나라에서는 여자가 열다섯 살이 되어 계례를 올리면 본격적으로 혼담이 오갔다. 서두르는 집안은 열두세 살 때 혼처를 정하기도 했다. 통상 계례를 올린 후 혼례를 준비했고 아무리 딸을 시집보내기 아쉬워하는 집안이라도 열여덟 살까지 붙들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둘째 딸이 시집가지 못하고 노처녀가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맏딸 심심문(沈心雯)이 시집을 늦게 갔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본인이 시집가지 않고 집안 살림을 돌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심균당은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헌신했지만 힘없는 자매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딸은 시집갈 생각뿐이라는 말도 있지만 영흥후부의 자매들에게는 가문이 먼저였다. 파워볼게임사이트
심균당과 키가 엇비슷한 심심련이 ‘남동생’에게 다가가 관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
“아당아, 귀원사에 갔다가 큰일을 치를 뻔했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시던데 다친 데는 없니?” 심심련이 질문하자 여동생들이 눈을 깜빡거리며 심균당을 쳐다보았다.
심균당은 자매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급히 고개를 저었다.
“누님, 전 괜찮아요.”
심균당은 자기가 멀쩡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보세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장수만 많이 다쳤어요.” 둘째 심심련은 손으로 가슴을 탕탕 쳤다.

“우린 너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앞으로는 애들처럼 덜렁거리지 말고 외출할 때 호위무사를 더 많이 데려가도록 해, 알았어?” “장수는 충성심이 강한 것 같아요. 작은언니, 나중에 장수의 새경을 좀 올려 줘요.” 넷째 심심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얼떨떨해진 심균당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심심유를 바라보았다.
심균당은 다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영흥후 부부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일념에 딸을 가르치는 데는 아주 소홀했던 것 같았다. 자매들한테서는 귀족 여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악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영흥후부는 영흥후가 작고한 후로 조부모와 자매들밖에 남지 않아 가족 수가 단출했다.
주인들의 수가 적은 데다 영악하지도 않다면 하인들이 업신여길 가능성이 높았다.
딸들은 결국 시집을 가야 할 텐데 심균당으로서는 심히 걱정스러웠다.
착하고 순진하기만 해서는 시집을 가서도 하인을 다루기가 만만치 않아 애를 먹을 게 파워볼사이트 뻔했다.
지금 얘기한 수종 장수만 해도 그랬다.

원로 영흥후는 어렸을 때부터 장수에게 심균당의 시중을 들게 했다. 당연히 장수의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심균당과 장수는 일반적인 주종 관계가 아니었다. 장수는 심균당을 보호하는 오라버니와 같은 존재였다.
장수는 영흥후부 노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수의 가족은 모두 영흥후부를 세이프파워볼 위해 일하는 노비였고 특히 장수의 새경은 노비 중에서도 제일 많았다.
크게 공을 세운 장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장수는 심균당한테 인정받고, 자기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할 뿐이었다.
장수에게는 올해 열다섯 살 된 여동생이 있었다. 장수가 노비인 것처럼 여동생도 당연히 노비 신분이었다.
장수는 그 여동생을 먼 친척뻘인 사내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했다.
장수의 여동생도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장수 일가는 그 사내보다 집안 형편이 훨씬 좋은 편이었지만 노비 신분이라 평민인 그 집안과는 결혼할 수 없었다. 남자의 집에서도 그녀가 노비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면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하는 법이다. 심심련과 심심유가 지혜로웠다면 진즉에 장수가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고도 남았을 터였다.

심균당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심심련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걱정 마. 장수가 크게 공을 세웠으니 당연히 합당한 대우를 해 주어야지.” 다섯째는 심균당의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 맑은 눈동자를 빛내며 힐끔 쳐다보았다.
심균당이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꺼리는 기색이 없자 그녀는 더 대담하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섯째는 심균당의 무릎과 부딪히고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심균당의 소매를 잡아 흔들었다.
심균당은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해 다섯째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다섯째는 몇 번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작은 입을 꼭 다물었다.

심균당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영흥후부의 적녀가 어떻게 서녀보다도 못할 수 있지. 이렇게 소심해서 혼자서 일을 척척 처리해 내는, 한 집안의 주모(主母)가 될 수 있겠어.’ 심균당은 가엽다는 듯 다섯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동(彤)아, 무슨 일이냐? 할 말 있으면 이 오라비한테 어서 해 보렴.” 약간 쉰 듯한 심균당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친근감이 있었다. 귀에 거슬리지도 않았고 독특한 매력도 느껴졌다.
표정까지 온화했기 때문에 다섯째 심심동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심균당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한참 후에도 다섯째는 요지부동이었다.
심균당은 심심동의 머리를 더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동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된단다.” 그 말이 가슴을 짓누르던 부담감을 없애 주었는지 심심동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심균당을 와락 껴안았다.
심심동은 가느다란 팔로 심균당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었고 머리를 가슴에 파묻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심균당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가슴이 평평했기에 망정이지 심심동이 너무 꼭 껴안는 바람에 하마터면 정체가 탄로 날 뻔했다.
심균당은 심심동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어린 여동생은 비쩍 말라 몸에 살이 거의 없었다.
“괜찮아. 오라비는 이렇게 건재하다고!” 옆에 있던 둘째와 넷째도 눈시울을 붉혔다. 더욱이 셋째 심심유는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영흥후부에 멀쩡한 남자라고는 아당이 ‘유일’했기에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심균당은 영흥후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귀원사에서 정말 변고가 생겼다면 영흥후부의 자매들은 앞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당은 성격까지 좋아졌다.
그전까지 심균당은 자매들과 수다를 떠는 걸 하찮게 여겼고 온종일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어떻게든 남보다 앞서려고 애쓸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섯째를 위로하기까지 했다.
자매들은 심균당의 성숙한 모습에 감동했을 뿐 아니라 큰 위안까지 받았다.
심심동은 동복 자매 중에서도 나이가 제일 어렸다. 영흥후 부인은 심심동을 낳은 후 바로 세상을 하직했다.
영흥후 부인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진 건 아니었지만 다섯째를 낳으면서 마지막 생명줄마저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 때문에 심심동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그녀를 냉대했다.
부모한테서 사랑받지 못한 심심동은 언니들의 관심과 조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그녀는 맏언니 심심문의 손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심심동은 심균당이 쌀쌀맞게 대해도 그녀를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 심균당이 갑자기 따뜻하게 대해 주자 심심동은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감정이 복받쳤다.
심심동은 오라버니의 품이 무척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능하면 영원히 오라버니를 껴안고 심균당의 품에서 꼭꼭 숨어 지내고 싶었다.
노부인은 심균당의 비밀이 드러날까 걱정이 되어 화청에 나와 보았다.
그러다 심심동이 심균당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본 노부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손녀들이 점점 버릇이 없어진다고 걱정했다.
‘다 큰 아이가 오라버니를 끌어안고 야단법석을 피우다니, 체통이 서질 않아!’ 따뜻한 바닥에 앉은 노부인이 마른기침을 몇 번 했다.


“됐다, 쓸데없이 울고불고 웬 소란이냐. 아당이 앉아 쉬도록 해 주어라.” 심심동은 그제야 너무 흥분한 나머지 버릇없이 굴었다는 걸 깨닫고 심균당을 놓아주었다.
그녀의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심심동은 어깨를 들썩이며 한쪽으로 물러났다.
어린 여동생이 울자 마음이 쓰인 심균당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주고 머리도 토닥여 주었다.
심균당은 노부인 옆에 앉았다.
“할머니, 다 저를 걱정하다 그런 것이니 누님과 동생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아당아, 너도 참…….”
노부인은 수심 가득한 눈길로 심균당을 쳐다보았다.
사실 손녀 중에서도 노부인은 심균당을 제일 아꼈다. 심균당도 다른 손녀들처럼 여자였지만 영흥후부의 흥망성쇠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심균당에 비하면 나머지 자매들이 하는 고생은 고생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래도 어렵사리 손녀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심균당의 성격도 전보다 훨씬 좋아진 걸 본 노부인의 마음이 흡족했다.
이에 노부인은 손녀들에게 복수당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원로 영흥후가 몸져누워 있었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기쁨을 반감시키지는 못했다.
영흥후부의 음식은 무척 평범했다. 복수당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치와 낭비가 없었다.
노부인은 손녀들과 함께 화청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들었다. 요리는 총 일곱 가지였다.

다섯째 심심동도 오라버니 심균당이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심동은 랄자계정(*辣子鷄丁: 닭고기에 매운 향신료 등을 넣고 볶은 요리)을 심균당 앞에 놓았다.
예전 심균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맛이 달라졌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받았다.
심균당은 기억을 더듬었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가족들의 입맛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원래 주인은 가족들의 기호와 입맛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원래 주인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가문은 결국 가족으로 이루어진 것인데도 오히려 그는 입신양명에만 매달려 가족들을 등한시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심균당은 자신이 이 세계에 온 게 영흥후부한테 득이 되는지 실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심균당은 원래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현대에 있을 당시 그녀는 덜렁거리는 면도 없진 않았지만 머리도 잘 돌아가고 붙임성도 있어서 낯선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곤 했다. 한마디로 호감형이었다.


심균당은 음식을 먹으면서 할머니와 자매들이 하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넷째 심심유가 맞은편에 있는 오리구이를 세 번이나 힐끗거리자 눈치 빠른 심균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심균당은 공용 젓가락으로 오리의 다리를 집어 심심유의 밥그릇에 올려 주었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오리고기가 밥 위에 얹어지자 심심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심균당은 이상하다는 듯 심심유에게 물었다.
“왜? 오리고기는 별로야?”
심심유는 심균당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오라버니. 오리고기를 좋아해요…….” 옆에 있던 노부인은 넷째 손녀가 울려고 하자 끼어들었다.
“오리고기도 네 입을 막지 못하는 것이냐? 어서 먹거라.” 노부인은 심균당에게 랄자계정을 집어 주며 자상하게 말했다.

“우리 아당이 동생한테 음식을 얹어 준 건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지?” 심균당은 심심유가 왜 감동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평소 쌀쌀맞은 모습만 보던 자매들은 심균당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밥 위에 새빨간 닭고기가 얹어진 걸 보고 매운 걸 싫어하는 심균당은 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원래 주인이 나를 잡는구먼…….’
심균당은 어쩔 수 없이 매운 닭고기를 먹었다. 너무 매운 탓에 얼굴이 금세 새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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